닥터 제이의 특별한 일상

“이래 봬도 나 대학까지 나온 사람이오.” 누가 뭐라고 그랬나. 느닷없이 그는 자기 학력을 밝히더니만 어둠 속으로 사라졌다.

 

 

1. 작가소개

 

윤흥길

 

전북 정읍 태생(1942 ~ ) 전주사범학교와 원광대 국문과 졸업.

 

1968년 《한국일보》신춘문예에 단편 <회색 면류관의 계절>이 당선되어 등단. 윤흥길은 7,80년대를 대표하는 작가의 한 사람이다. 그는 철저한 리얼리즘적 기율에 의해 시대의 모순과 근대사에 대한 심원한 통찰력을 보여 주면서도, 한편으로는 일상에 대한 작고 따뜻한 시선을 아울러 갖추고 있다.

 

2. 핵심정리

● 갈래 : 단편소설, 시대고발적 성격

● 배경 : 1970년대 후반 급격한 도시 개발로 인한 도시 빈민 계층이 발생하던 시기의 성남 지역

● 시점 : 1인칭 관찰자 시점

● 주제 ⇒ 현대인들의 개인주의적 성향과 자존심에 대한 문제

산업사회에서 소외된 인생의 비극적인 삶

● 표현 : ①과거와 현재가 적절히 교차되면서 소외 되고 병든 인간에 대한 연민의 정이 잔잔하게 표현되고 있다.

②도시 빈민층의 시대적 현실을 구체적 상황을 통해 고발하고 있다.

 

 

3. 인물

●오선생 → 작품의 화자, 국민학교 교사, 권씨에 대해 점차적으로 관심을 보임.

●아내 → 평범한 소시민적인 가정 주부로 개인적임

●권기용 → 주인공, 도시 개발의 피해자. 성실하고 내성적이며 자존심과 독립심이 강함

●이순경 → 이웃에 대한 관심과 사랑을 보이는 인간성을 가짐

 

※ 인물의 전형성

인간적, 비윤리적 몰가치 현상으로 소외되고 병든 변두리 인생의 전형적 인물로 권씨가 설정되었고, 지나친 관심으로 이사를 하고 권씨와 같은 소외되고 가난한 인간에 대하여 연민 어린 관심 외엔 아무것도 보여줄 수 없던 시대의 전형적 인물로 ‘나’라는 인물이 설정되어 있다.

 

4. 구성

발단 : 권씨가 '나'의 집 문간방에 전세로 입주함

전개 : 생활 능력이 부족한 전과자이면서도 구두에 대한 정성이 지극한 권씨.

위기 : 아내의 입원비를 빌리려는 권씨의 청을 거절했다가 나중에 권씨 모르게 돕게 됨.

절정 : 권씨가 '나'의 집에 강도로 침입했다가 자존심만 상한 채 나감

결말 : 아홉 켤레의 구두만 남기고 권씨가 행방 불명됨

 

 

5. 이해와 감상(1)

 

1977년 '창작과 비평'에 발표한 중편 소설로 도시 빈민의 소요 사건 주인공으로 지목되어 옥살이를 하고 나와, 지식인으로서의 자부심 하나에만 매달린 채 무능력자의 길을 걸어가는 한 소시민의 삶을 그린 작품이다.

 

어떠한 개인의 문제도 사회 문제와 무관하지 않음을, 또한 한국 사회의 폭력적 구조를 깨닫게 해 주는 소설이다.

 

윤흥길의 작품 세계는 두 계열로 집약된다. 하나는 어린 시절 6.25전쟁의 와중에서의 체험을 회상하는 방식으로 서술한 작품이며, 또 하나는 어른이 된 뒤에 관찰한 현실 사회의 모순을 풍자, 고발하는 작품이다. 전자의 예로 <장마>가 있고, 후자의 예로 <아홉 켤레의 구두로 남은 사내>를 들 수 있다.

 

1970년대의 산업화 시대, 경제 입국의 시대라 불릴 만큼, 한꺼번에 여러 방면의 변화를 드러냈던 시기이다. 그 여파로 비인간적, 비윤리적 몰가치 현상도 나타났고 이에 따라 소외되고 병든 변두리 인생의 길을 걷는 인간도 많아졌다.

 

이 작품은 바로 이러한 인간의 전형이다. 오로지 지식인으로서의 자존심 하나만으로 어렵게 살아가는 권씨야말로 시대적 현실을 상징하는 인물인 것이다.

 

그리고 또 하나 중요한 것은 서술자 '나'의 자기 반성의 태도이다. 20평 짜리 방에 세들어 사는 동안 가난한 이웃들이 이른바 '선생댁'인 자신에게 보여 준 지나친 선망과 관심이 부담스러워서 '나'는 안주처를 찾아 그들을 떠난 바 있다.

 

그러나 전세로 입주한 권씨와 같이 소외되고 가난한 인간에 대하여 연민 어린 관심 이외에는 보여 줄 게 없었던 '나'의 처지는, 작가가 시대의 비극적 현실을 절실하게 느끼면서 그것을 극복하려는 방안을 탐색하고 있음을 암시하는 것이다.

 

 

6. 이해와 감상(2)

 

이 작품은 '오선생'이라는 3인칭 서술자를 통하여 '권기용'이라는 가난한 서민의 삶을 형상화하고 있다.

 

이 작품의 주인공 권씨는 경제적인 능력도 없고, 산업사회에서는 쓸모없는 자존심을 훈장처럼 번득이면서 좌절만 거듭하는 다소 희극적인 인물이다.

 

작가는 이러한 권씨를 통하여 현대사회의 병증을 함축성 있게 암시한다. 작품의 인물 권씨는 작가 자신의 반영은 아니지만, 작가의 자기 성찰에 의하여 발견된 자신의 분신이라고 할 수 있다.

 

권씨의 반짝거리는 구두는 그의 발밑에 떨어진 마지막 자존심이다. 그는 열 켤레의 구두를 가지고 있고, 그 중 일곱 개의 구두를 닦아놓고는 매일 하나씩 새로운 구두로 일 주일을 보내는 사람이다.

 

복장은 초라해도 구두만은 반짝이게 하는 것은, 그의 마지막 자존심이기 때문이다. 그는 비록 가난하고 옳은 직업이 없이 전전하지만, 그 내면에 들어박힌 자존심은 지키고자 한다. 그것이 반짝거리는 구두로 표현되고 있다.

 

그러니 가난한 자에게도 인간으로서의 자존의식은 반짝거리고 있는 것이다.

 

 

7. 이해와 감상 (3)

 

'나'와 '권씨'는 모두 지식인 계층에 속하는 사람이었다. 지식인은 양심의 소유자임과 동시에 대중과의 정신적 거리를 얼마간 지닌 계층이다. 그들이 부를 축적하고 반도덕적 행위를 보이는 경우는 드물지만, 지식인은 흔히 '관조적 지성'이라 비판되는 요소를 지니고 있다.

 

즉 어떤 실상을 비교적 바르게 보고, 판단 또한 옳지만, 그 실상의 중심으로 들어가지 않는 태도를 지닌다는 말이다. 그런 점에서, 권씨는 그의 과거사를 통해 알 수 있듯이 처음에는 그 역시도 하층민과 거리를 둔 삶을 살았지만, 인간의 처절한 본성을 본 뒤 시위에 뛰어 들어 고단한 삶이 시작된다.

 

비록 적극적인 것은 아니었지만 현실의 참담함에 달려들었던 것이다. 이런 권씨에 비해 화자인 '나'는 같은 지식인이면서도 안락한 생활에 젖으려 하고, 관조적 태도를 지니고 있다. 권씨의 태도가 화자보다 높은 위상을 가진다고 할 수 있다.

 

 

8. 줄거리

 

국민학교 교사인 오선생은 셋방을 전전하다가 집 한 채를 장만한다. 그리고 문간방을 세 놓는다. 그러나 자신들의 서러웠던 처지를 생각해서 간단한 조건만을 제시한다.

 

그러나 세를 들어올 사람은 처음부터 어긋나기 시작해서 보증금도 다 내놓지 않고 기일보다 앞서서 이사 온다는 통보를 하고, 게다가 이순경은 문간방 권씨의 동태를 살펴 달라고 하는 특별한 부탁까지 한다.

 

권씨네가 이사를 오는 일요일, 너무 간단한 이삿짐에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딸 하나 아들 하나를 데리고 오는 그들의 짐이라곤 이불 보따리 하나와 취사 보따리 하나가 전부였다.  오선생이 이사에 관한 이야기를 하다 어안이 벙벙해 있을 때, 권씨는 반짝이는 구두를 바짓가랑이로 이리 저리 닦고 있었다.

 

세를 들어온 권기용 씨는 성남지구 택지개발이 시작될 때, 내 집 마련의 꿈을 안고 철거민의 딱지를 샀다가 당국의 거듭되는 불합리한 요구에 결국 손을 들게 되었다. 권씨는 철거민들의 권리를 찾기 위해 조직된 대책위원회의 회장을 맡아 시위 주동자로 몰려 감옥 생활을 한 전과 기록을 가진 인물이다.

 

왜소하고 선량한 모습에 무척 내성적인 성격의 권기용씨는 그래도 대학까지 다녔다는 자존심만은 대단하다. 그는 아홉 켤레나 되는 구두를 장만하여 구두 닦기에 신경을 곤두세우는 것이다. 구두 닦는 솜씨도 여간이 아니었으며, 구두를 다 닦은 권씨의 눈빛이 기쁨으로 반짝였다. 못생긴 권씨의 얼굴에서 눈만은 착하게 보이고 맑았다.

 

그러던 어느 날 이 순경이 오선생을 찾아와 결국 자존심 때문에 권씨가 직장을 그만 두었다는 이야기를 한다. 공사장에서 우연히 가정 방문을 가던 오선생을 만난 권씨는 매우 당황해 한다. 저녁에 소주 한 병을 들고 와서 자신이 안동 권씨의 후손이며 대학까지 나왔다는 권씨의 기나긴 신세한탄을 오선생은 들어야 했다.

 

어느 날 갑자기 권씨가 학교로 찾아와서 출산하는 아내의 입원비를 빌려달라는 부탁을 나에게 한다. 내가 당장 마련할 수가 없다고 거절하자, '나도 대학까지 나온 사람이요' 하면서 그는 돌아갔다.

 

나는 찝찝한 마음에 돈을 주선하여 병원으로 찾아가 입원 수속을 해주었다. 돈을 마련하러 나간 권씨에게선 아무런 소식이 없었다. 그날 집에 도둑이 들었다. 도둑은 무척이나 서툴렀다. 내가 도둑에게 경력이 일천하다고 하자 그는 도둑맞을 물건도 제대로 없는 주제에 이죽거린다고 하였다. 강도가 현관의 구두를 신을 때, 그 구두를 보고 싶었지만 참았다. 강도가 자신도 모르게 문간방 쪽으로 가자, 나는 대문은 저쪽이라고 말해 주었다.

 

그 후 권씨는 귀가하지 않았다. 그 날 나는 권씨를 알아보았던 것이다. 복면의 권씨가 다음 날 떳떳이 나를 볼 수 있도록 배려한 것이 후회되었다. 새끼들이 자는 방으로 들어가려는 길을 가로막은 그것이 그에게 대체 무엇으로 느껴졌을까. 아내가 병원으로 간 뒤, 나는 권씨의 방을 살펴보았다. 잘 닦여 있는 일곱 중에서 하나를 생각해 보며, 그 구두가 쉽사리 돌아오지 않을 것임을 알딸딸하게 깨달았다. 그의 행방불명을 알리려고 나는 이순경에게 전화를 걸지 않을 수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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