닥터 제이의 특별한 일상

빗소리 - 주요한

 

비가 옵니다.

밤은 고요히 깃을 벌리고

비는 뜰 위에 속삭입니다.

몰래 지껄이는 병아리같이.

 

이지러진 달이 실낱 같고

별에서도 봄이 흐들 듯이

따뜻한 바람이 불더니,

오늘은 이 어둔 밤을 비가 옵니다.

 

비가 옵니다.

다정한 손님같이 비가 옵니다.

창을 열고 맞으려 하여도

보이지 않게 속삭이며 비가 옵니다.

 

비가 옵니다.

뜰 위에, 창 밖에, 지붕에,

남 모를 기쁜 소식을

나의 가슴에 전하는 비가 옵니다.

 

 

핵심 정리

갈래 : 자유시. 서정시

율격 : 내재율

성격 : 음악성 중시. 감각적 이미지

구성 :

1연 밤비의 소리

2연 밤비의 서경

3연 비에 대한 친화감

4연 시적 자아와 비의 합일

제재 : 비

주제 : 봄비를 맞는 기쁨

출전 : <폐허 이후>(1924)

 

 

이해와 감상

봄밤에 비 내리는 풍경과 그로 인해 빚어지는 시인의 서정을 포근하고 아늑하게 형상화한 작품이다.

 

1-2연에서는 밤비에 대한 서경적인 묘사를 주로 하고 있다. 그러나 이미 그 안에서도 ‘비는 뜰 위에 속삭입니다’라는 청각적 이미지를 통하여 시적 자아의 감정 이입을 드러내고 있다.

 

3-4연은 다정한 손님같이 비가 온다고 하여 비에 대한 친화감을 구체화시킨다. 손님처럼 외부로부터 다가온 빗소리는 마지막 연에 이르면 완전히 서정적 자아의 가슴에 전달된 기쁜 소식으로 동일화되어 서정적 자아와 완전한 합일을 이루고 있다.

 

빗소리의 청각적 이미지는 1연에서 우선 ‘비는 뜰 위에 속삭입니다’만을 두고 볼 때는 은유법과 결합된 양상인데, 여기에 그치지 않고 ‘몰래 지껄이는 병아리같이’의 구절이 결합되어 직유법으로 전환된다.

 

 

이들 비유법은 비가 조용하게 내리고 있음을 명징하게 부각시키는 기능을 하고 있다. 그리고 3,4연에서 비는 시각적 이미지로 노래된다.

 

그런데 ‘다정한 손님같이’ 오고 있지만 보이지 않는다고 역설적인 표현을 쓰고 있는데 그 대신 불가시적(不可視的)인 그 존재는 이내 서정적 자아의 가슴에 마치 기쁜 소식을 전하듯 다가온다. 시각적 이미지에서 몸 전체로 느끼는 듯한 촉각적 이미지로 시가 변하면서 서정적 자아는 비와 일체감을 맛보게 되는 것이다.

 

 

이 작품은 모두 네 연의 발전적 구성을 취하고 있으며 비의 의인화를 통한 봄의 서정을 동요적 어법으로 효과적으로 드러내고 있다. 이러한 동요적 어법은 주요한의 의도했던 민중시라는 개념에 부합된 시적 장치로서 매우 쉽게 시를 전달하는 효과를 창출하였다. 1924년 작품으로 당대에 범람했던 감상적 낭만주의와 어려운 한자어투의 시들과는 다른 매우 세련된 우리말의 언어 감각을 드러낸 시라고 평가할 수 있다.

 

그러나 한편 이 시의 서정은 1920년대의 감상적 낭만주의나 김소월, 한용운의 시들 어느 것하고도 관련이 먼 개인적 감상주의의 틀 안에 갇혀 있는 것이기도 하다.

 

서정시의 본질이 세계의 자아화, 즉 시적 자아에 의한 객관적 세계의 주관화에 있다면, 이 작품의 시적 자아는 객관화된 세계[비]를 자기만의 주관적 내면 공간에 용해시킴으로써 이 시를 한 편의 훌륭한 서정시가 되게 하였다.

 

1연은 어두운 밤, 뜰 위에 내리는 비의 모습을 선명한 회화적 이미지로, 2연은 비가 오려는 조짐을 시각과 촉각이 교차한 감각적 이미지로 묘사하고 있다. 3연은 1·2연의 객관적 비유를 주관적 비유 감각으로 바꾸어 비 내리는 상태를 보다 사실적으로 묘사하고 있으며, 마지막 4연은 3연에서 '다정한 손님같이' 내리던 비가 시적 자아와 합일되는 순간을 노래함으로써 '남 모를 기쁜 소식을 / 나의 가슴에'만 전해 주는 비를 그려내고 있다.

 

이 작품은 이와 같이 사물을 더욱 선명하고 재미있게 표현하는 영상 수법(映像手法)을 통해 선명하고도 구체적인 이미지 제시에 성공하고 있다. 물론, 보는 시각에 따라 이 작품은 단순히 자연을 노래한 서정시일 수도 있고, 시적 자아의 마음을 빗소리에 의탁하여 조국 해방의 꿈을 표현한 상징시일 수도 있다.

 

 

전자의 경우라면, 동시풍(童詩風)의 정감어린 서정과 섬세한 이미지가 돋보이며, 후자의 경우라면, '밤은 고요히 깃을 벌리고 / 비는 뜰 위에 속삭입니다. / 몰래 지껄이는 병아리같이'와 같은 표현에서 그와 같은 특징을 찾아 볼 수 있을 것이다. 즉, 어미 닭이 날개를 펼쳐 병아리를 품어 주듯, 비가 대지를 촉촉히 적셔 주듯, 질곡(桎梏)의 식민지 현실을 포근히 감싸 안고 민족에게 '남 모를 기쁜 소식을' 전하고 싶은 시인의 마음이 나타나 있다고 하겠다.

 

이 작품의 특징은 감각적 형상 능력의 우수성 이외에도, 일체의 한자어를 배제하고 순수한 우리말의 율감을 살려 밝고 서정적 감각을 노래함으로써 우리말의 세련성을 부각시켰다는 점에서도 찾을 수 있다. 특히 이 작품에 나타난 탁월한 이미지는 30년대나 되어야 진정한 이미지스트가 등장한다는 점을 고려한다면, 분명 이 시는 당시로는 수작(秀作)이 아닐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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